문화시민세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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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민세상 칼럼 상세내용
제목 인간존중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성숙
등록일 2017-01-13 15:35:30 조회수 245

여론정치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촛불정치의 바람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2016년 초겨울 촛불이 보여준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미증유의 배신감과 분노였다. 국민이 느낀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탄핵 심판 절차를 밟고 있다. 촛불은 곧 국민의 뜻이고, 누구도 거역 할 수 없는 민심이 돼 버렸다. 광장의 민심은 천심이므로 질서 있는 퇴진에서 탄핵 까지 몇 차례나 말이 바뀌어도 시비의 대상을 넘어선 초법적 바람의 위세 속에 묻혀 버렸다. 그래서 그것은 분명 민심의 승리다. 그러나 그 바람을 일으킨 주최자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 정도 집회에 소요되는 자금의 출처 등은 언론 보도의 관심권 밖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바람은 계속 불고 있고, 잠잘 줄을 모른다. 촛불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언론과 정치인들이 국가 이익이나 민생경제와 거리가 먼 권력욕과 이기적 감성에 붙잡혀 부채질을 해대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주주의 기본인 법치주의와 인간존중의 가치를 조롱하는 데 까지 이르고 있다. 언론이 앞장서 의혹과 폭로를 일삼아 분노의 민심을 이끌고, 정치인, 지식인 까지 촛불민심에 무임승차해 버린 형국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살아온 한국인의 의식세계는 백성이 세상의 근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존중의 홍익인간 사상은 아주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변하지 않고 이어져 왔다. 이 의식세계의 맥락 속에서 대한민국은 민주화의 대 과업을 성취했다. 민주화는 인간존중을 기본이념으로 삼는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을 의미한다. 분명히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모양새를 갖추었다. 일인독재나 장기집권은 사라졌다. 평화적 정권교체도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화의 또 하나의 잣대인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혼란의 위기 일수록 국민에게 희망과 단합을 이끌어 낼 경륜과 비전의 정치는 실종 상태다. 패거리 3류 정치의 혼돈만이 있을 뿐이다. 언론 매체는 저질 황색언론의 시궁창 속에서 법치주의에 대한 확신을 흔들고, 인간존중의 가치를 짓밟는 센세이날리즘에 빠져 있다. 그리하여 민심이 천심이란 가면 뒤에 숨어서 민심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당신은 인간으로서 존중 받고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당신은 법치주의의 보호를 잘 받고 있습니까?” 이 같은 질문에 서슴없이 그렇다고 답변하는 한국인이 몇 사람이나 될까. 인간존중은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지켜야할 기본중의 기본이다. 인간존중은 민주적 질서와 절차라는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지도적 정치인들의 언행과 행태를 볼 때, 그들에게 인간존중이란 절실한 민주적 가치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모습은 법치주의 위에 군림하는 선동적 독재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 들은 법치주의와 인간존중의 가치를 실천 하는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상대방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강박적 투쟁이 난무할 뿐이다. 그러니 일반국민은 존중받는 주인이 될 수 없고, 공정하고 안전한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한국 지식인들에게 인간존중이란 무엇인가. 지식인들에게 인간존중이란 이성적 합리주의에 해당하는 명제다. 지식인들이 감성적 진영논리의 포로가 되면, 이성적 합리주의와 인간존중의 가치를 지켜 낼 수 없다. 투쟁의 논리나 적개심의 감정에 휘말리게 될 때, 이성적 합리주의는 명분을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게 된다. 인간존중의 휴머니즘에 심취한 공산주의 지식인들이 이념적 도그마와 자본가들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 잡혀 이성적 합리주의를 포기했던 역사적 사례가 있다. 그러므로 지식인은 이성적 합리주의에 입각한 인간존중을 말해야 한다. 지식인 중에서 학자와 언론인은 대표적 지식인이다. 방송 매체에서 평론가나, 토론자로 등장하는 수많은 지식인이 있다. 인쇄매체와 인터넷 공간을 지배하는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도 있다. 그들이 진정 바람직한 지식인의 모습을 얼마나 보여 주고 있는가?

 

거세게 불고 있는 속물적이며 선동적인 여론정치의 바람이 한국 민주주의를 망쳐 놓고 있다. 상당수의 정치와 언론이 편승하고 있다. 사람들도 거기에 함께 박수 치고 있다. 여론은 천심이라 불리는 민심이 아니다. 수년전 온 나라를 집어 삼켰던 광우병 여론의 광풍이 어리석은 한때의 해프닝이 된 것과 같이, 여론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광우병여론의 주역들 중 어느 누가 책임을 졌고, 처벌을 받았는가? 여론정치에 길들여지면 국가 백년 지 대계를 도모하는 비전의 정치가 숨 쉴 수 없다. 여론정치의 막다른 골목은 대중적 인기영합주의와 포퓰리즘이다. 백성이 하늘이란 말은 정치인과 지식인이 나라의 근본인 백성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위해 헌신 하라는 뜻이다. 법치주의와 인간존중의 가치를 백성이 골고루 향유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성숙 시키라는 뜻이다.

 

정치인과 지식인은 민주주의를 퇴행 시키는 여론정치의 함정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선동적 여론에 휘둘리는 정부, 정치인, 지식인, 국민 개개인, 모두 제 자리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인간존중의 가치를 신념화하고 실천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한국 민주화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말해 주고 있는 바와 같다. 4.19 혁명 후,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회자 됐었다. 이후 민주화 역정은 눈물겨운 투쟁의 역사였다. 한국의 민주화는 그렇게 얻은 것이다. 그래서 그 만큼 소중하게 키워야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이제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이 문화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나 퇴행적 정치와 언론을 극복하고 한 차원 더 높게 성숙해야할 단계에 와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은 법치주의와 인간존중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 시민정신 고양 여부에 달려 있다. 이들의 시민정신은 정치와 언론의 잘못된 길을 바로 잡을 힘으로 자라나야한다. 2002년 월드컵 시청광장 응원축제의 질서와 청결의 가치가 오랫동안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 내리지 못했어도, 그 때의 학습효과는 분명하게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되 살아 났다. 한일 월드컵개최에 즈음하여 1997년 발족한 친절 질서 청결의 문화시민운동 5년 만에 성취한 배려와 인간존중의 시청 앞 월드컵응원 축제의 기억을 시민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2016년의 초겨울 광화문 광장은 단순한 축구대회 응원이 아닌 진정한 민심이 천심임을 깨우쳐 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알리는 현장이 돼 주었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 정치와 언론과 지식인은 광화문광장의 시민정신을 있는 그대로 배워 따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광화문 광장의 시민정신은 법치주의와 인간존중의 가치를 의미한다. 시민이 먼저 법치와 인간존중의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 주며 세상 바꾸기에 능동적으로 나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공동체를 향한 국민적 염원을 실천해 보인 것이다. 민주주의 성숙을 가로 막는 개념 없는 정치와 언론의 몰염치를 응징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인간존중의 가치와 민주주의 성숙을 보통시민들이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존중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성숙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습의 과정이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은 학습은 공교육과 평생교육, 반복적 경험을 제공하는 시민운동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법치주의와 인간존중의 가치를 생활 속의 습관으로 만들고자, 친절, 질서, 청결의 실천덕목 학습을 선택과 집중의 방법으로 지난 20년 가까이 수행해 온 문화시민운동이 있다. 기초질서 지키기, 선진 형 한 줄로 서기, 아름다운화장실운동 등, 문화시민운동은 지금도 시민과 함께하고 있다. 문화시민운동은 작은 실천이 습관을 만들고, 존중과 배려의 민주시민 공동체문화를 일구어 낸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거대한 한강의 발원지가 작은 옹달샘이란 이치와 똑 같다.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이 문화시민 운동에 각자 나름대로 참여하는 범국민적 운동이 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각자 가슴에 손을 얹고 나부터 지금부터 문화시민운동 가족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 보자.(후원회 가입: www.bkm.or.kr)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회장 이 진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