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료

  • home
  • 통합자료실
  • 교육자료
교육자료 상세내용
제목 가정중심 문화시민운동의 필요성과 기초덕목(문용린)
등록일 2005-01-21 00:00:00 조회수 3479
첨부파일
등록된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문 용 린 (서울대 교수)


1. 문화시민 운동의 필요성

인류의 긴 역사는 우여곡절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유, 평등, 평화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 쪽으로의 진보를 계속해왔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자유라는 가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서 이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인류는 피 흘리는 전쟁과 혁명을 수도 없이 겪어왔다. 그런 결과로 오늘날 인류는 엄청난 자유를 보장 받고 있다. 물론 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자유의 억압은 반시대적으로 낙인찍힌 엄청난 범죄로 부류 된지 오래다.
그래서 이제 인류의 진보는 자유의 확보와 쟁취라는 단계를 넘어서서, 자유의 질(
?"의 : quality of freedom)을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에 골몰하고 있다. 물론 북한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주민에 대한 자유의 억압이 있고, 그 주민들은 자유의 확보를 위해서 고생하고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자유의 확보는 이미 보장된 상태에서 단지 그 자유가 좀더 질적으로 고양된 모습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바로 인류가 직면한 21세기 최대의 문명사적인 과제이다.
1990년대 초 소련연방의 해체로 동구권 주민에 대한 전반적인 자유의 억압은 해소되었지만, 그 자유에 대한 질 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세르비아에서 나타난 것 같은 처참한 비극이 발생했다.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를 탈피한 이 시점에서 전 세계의 국가들은 한층 자유로워졌지만, 자유의 질 관리가 부족한 나라들 때문에 세계는 더 복잡하고 위험해 졌다.
훗세인이 퇴출당한 이라크에서 자유의 억압은 해소되었지만, 자유의 질 관리가 안된 주민들 때문에 그곳은 여전히 혹은 더 위험한 곳이 되어 버렸다. 이점은 북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냉전해체로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이 감소됨에 따라 북한의 자유도는 증가 했지만, 자유의 질 관리가 안된 북한은 위험한 놀이를 위험한 줄 모르고 계속하고 있다.
자유에 대한 억압의 해소는 축복이지만, 자유의 질 관리 능력을 높이지 못하면, 그것은 다른 종류의 재앙을 끌어들이는 저주의 실마리이기도 하다. 자유의 질 관리는 바로 자유를 값어치 있게 누리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자유에 대한 질 관리의 핵심은 타인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는 지혜의 습득에 있다. 나의 자유만 주장하고, 남의 자유는 안중에 없다고 하면, 그것은 양육강식의 동물사회에 지나지 않고, 내 자유는 없고 남의 자유만 인정하면, 그것은 노에의 삶이다. 나와 남의 자유를 동시에 최대한으로 조화롭고 균형 있게 실현하는 것이 자유의 질을가름하는 기준인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자유의 질은 어떻게 확보되고 개선되어 갈 수 있는 것일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법의 강력한 집행을 통해서 자유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문화시민의식의 심화와 확산을 통해서 자유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로의 의미를 싱가포르의 사례를 통해서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1959년 싱가포르 자치령이 가능해지자 초대 총리에 임명된 리콴유 총리는 새로운 싱가포르 혁신이라는 야망에 불탔다. 그는 싱가포르를 깨끗하고 친절하며 예의바르며 부정부패가 없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항상 분쟁 상태에 있었던 말레지아와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이며,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경제에 의존해서 싱가포르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식민지 생활로부터 벗어난 싱가포르인들은 이른바 자유를 만끽하게 되어 자율통제가 어려웠다. 리콴유 총리의 기대처럼 주민들은 쉽사리 청결하고 친절하고 예절바르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자유는 확보했으되, 자유의 질 관리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그 유명한 가부장적 도덕통치 즉 법을 통한 자유의 질 관리에 나선다. 법을 통한 도덕행동의 규제에 나선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예컨대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북한에서도, 껌을 씹는 것은 주민들의 자유이다. 그런데도 자유민주 국가인 싱가포르에서는 주민들이 껌을 씹을 수가 없었다. 껌을 수입금지 시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씹고 버린 껌 때문에 도로가 미관상 불결해 보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인들은 껌 씹을 자유를 억제 당하고 있고 엄청난 벌금 때문에 휴지를 마음대로 버릴 자유를 제한 당하고 있지만, 그 대신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청결하다. 이렇게 법을 통해서 철저하게 자유의 질 관리를 한 덕분에,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깨끗하고 친절하며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가 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싱가포르의 성공사례는 많은 나라에 귀감이 될 법하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사례에 찬탄을 하면서도 정작 이를 그대로 본받아 벤치마킹하려는 나라는 많지 않다. 법에 의한, 법을 통한 자유의 질 관리의 부작용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씹고 버린 껌이 도로를 오몀 시킨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껌 씹을 자유를 원천 봉쇄하는 것 또한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바람직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껌은 마음대로 씹되, 길거리를 더럽히지 않게 씹은 껌을 스스로 알아서 잘 처리할 수 있는 문화의식의 계발이 이래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다. 싱가포르와 대비되는 나라가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의 선진 국가들이다. 프랑스는 길거리에서 휴지 버리는 것과 관련해서 이상할 정도로 느껴질 만큼 간섭을 하지 않는다. 담배꽁초 버리기에도 무척 관대하다. 그럼에도 파리시내는 결코 불결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도덕을 법으로가 아니라, 워싱턴의 예의규범(George Washington"s Rules of Civility & Decent Behavior)같은 것을 가르치고 내면화시킴으로써 자유에 대한 질 관리의 능력을 높이려 애쓴다.
법에 의한, 법을 통한 자유의 규제만이 청결하고 예절바르며 친절하고 부정부패 없는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의 대다수 선진국을 보더라도, 싱가포르처럼 엄격하게 법의 규제를 펼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시민 각자의 문화의식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유의 질 관리는 궁극적으로 볼 때 시민 한사람 한사람 의 문화의식에 맡겨 놓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문제는 시민들의 문화의식이 낮을 경우 도덕행위의 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사회는 당분간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며 절망적으로 보일 수가 있다. 그래서 리콴유 총리처럼 법을 통한 도덕규제로 유혹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가 아닌 한 그런 방책은 성공의 가능성이 낮다.
현재 한국사회는 자유가 넘치는 사회이다. 1980년대 후반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의 덕택으로 미증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자유의 확보와 향유의 폭은 거침없이 확대되었는데, 이런 자유를 도덕적으로 수준 높게 관리할 능력은 발휘되지 않고 있다. 그 생생한 사례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교통사고 발생률과 사망률이 세계에서 여전히 3-4위에 머물고 있다. 자기 동네에서 차에 치이고 안전사고를 당하며 폭력 등으로 다치고 사망하는 어린이 사고가 세계에서 언제나 1-2등을 다투고 있으며, 이혼율이 일본과 대만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노동조합의 쟁의 발생비율이 엄청나게 높으며, 무절제한 자유표현의 극치인 범죄율을 일본과 견주어 보면 단위 인구 당 살인사건 비율이 1.7배, 강도 사건이 3.5배, 폭력사건이 38배에 이른다. 특히 우리나라는 빨리 빨리하는 성격에 냄비처럼 금방 달아오르는 성미 때문에 외국인이 보기에 무례하고 거칠어 보이는 면이 많다.
1650년대 한국에 표류한 네델란드 사람 하멜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거칠고 거짓말을 일삼는 것처럼 보였으며, 안창호· 이광수· 최남선· 최현배 등이 지적하는 한국인의 모습도 부정직하고 부정부패한 모습이었다. 오늘날에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거짓말을 버릇처럼 되뇌어 국민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이런 모두가 자유의 질 관리 능력의 부족 때문이며, 이것은 법으로 규제할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시민의식의 개선과 드높임으로 해결할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의식개혁운동이 8.15 해방이후부터 정부차원은 물론 민간 차원에서 현재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안호상의 일민주의도 그런 노력의 초창기 활동이고, 박정희 시대의 제2경제와 새마을 운동, 김대중 시대의 제2건국운동이 모두 정부 주도의 그러한 의식개혁운동의 일환이었다. 민간차원에서는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 농군학교가 돋보인 의식개혁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부와 민간 주도의 의식개혁 활동은 1980대부터 벌어진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의구심만 받게 된다. 민간의 순수한 의식개혁운동조차도 정치적 동기가 있을 것으로 오해 받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88년 올림픽 대회를 치르게 되고 다시 이어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개최하게 되면서 종래의 의식개혁 운동의 성격이 문화시민운동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국제사회에 부끄럽지 않은 행위규범의 생활화와 습관화가 발등의 불로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글로벌 시티즌의 예의규범이 목전의 과제로 닥아 왔던 것이다. 일본과 공동개최로 낙착된 2002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많은 시민들의 걱정이 생겼다. 시민적 행위규범에 일본과 너무 대비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이런 걱정이 바탕이 되어 반관반민의 문화시민운동 단체가 2002년 월드<